일본의 거장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3년 발표한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소개입니다. 철도 회사에 다니던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의문을 품고 그 진실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내용입니다. 이 소설을 과연 ‘미스터리 콘텐츠’로 봐도 괜찮을까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미스터리 소설과 비교하자면 전반적으로 굉장히 담담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한 인간이 인생의 전반에 거쳐 묻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는 모든 과정을 담고 있기에, 이 또한 미스터리가 아닐까 싶어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복잡하고 낯선 책의 제목
독자들에게 있어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아마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어로는 무려 스무 글자에 달하는 제목은 결코 쉽게 읽히지도, 외워지지도, 이해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초반부에서 이 난해한 제목의 의문이 풀리게 됩니다.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고등학교 시절 절친한 4명의 친구들과 함께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그룹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각각 아카, 아오, 시로, 구로 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카는 똑똑한 머리로 늘 우수한 성적을 받던 친구이며, 아오는 운동실력이 뛰어난 럭비부 주장, 시로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 구로는 센스 있는 유머감각으로 모두를 웃게 하던 친구였습니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저마다의 이름에 색깔을 의미하는 한자가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카는 붉은색, 아오는 푸른색, 시로는 흰색, 구로는 검은색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다자키 쓰쿠루는 그룹에서 유일하게 이름에 색깔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소설의 제목에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라는 문장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이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쓰쿠루는 각각의 캐릭터가 확실히 설명되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정작 자신은 어떤 정체성과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즉, 색채가 없다는 것은 딱히 본인만의 개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그렇게 독립적으로는 불분명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래도 색채가 풍성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름 가장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10대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인생 최대의 미스터리를 맞닥뜨리다
안타깝게도 다자키 쓰쿠루의 평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성인이 된 그는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 나고야를 떠나 도쿄에 위치한 대학을 다니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방학마다 고향 나고야를 찾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가 대학교 2학년이 되던 여름 방학. 그는 갑작스레 다른 네 명의 친구들로부터 절교를 선언받습니다. 네 명은 하나 같이 제대로 된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그저 쓰쿠루에게 ‘널 만나고 싶지 않아’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합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어떠한 변명이나, 해명을 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그 후 쓰쿠루는 커다란 충격에 빠져 1년이 넘도록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럼에도 계속 시간은 흘러 어느덧 쓰쿠루는 서른여섯 살의 30대 중반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철도 회사에 다니며 겉으로 보기엔 무난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과거 소중한 친구들로부터 절교를 당한 사건의 충격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큰 상처, 그리고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쓰쿠루의 여자친구 사라는 그에게 한 가지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비록 16년의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라도 친구들을 다시 찾아가서 과거의 의문을 풀어보라는 것입니다. 이에 쓰쿠루는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 그리고 친구들을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질문의 답을 찾아 떠나는 순례길
쓰쿠루의 순례는 그가 일하고 있는 도쿄의 철도역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역을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과거 관계의 단절을 겪은 아픔이 있습니다. 그가 철도를 연결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은 곧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소설은 독자에게 다양한 미스터리한 질문들을 제시합니다. 과연 그가 16년 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금 관계의 회복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도대체 그는 왜 친구들에게 갑작스러운 절교를 선언당한 것일까요? 소설에서는 쓰쿠루가 친구들을 찾아 나서는 일을 ‘순례’라는 독특한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쓰쿠루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이 여정을 계획했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과거를 다시 짚어가며 거슬러 올라가는 회복의 순례길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쓰쿠루는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을 하나둘 재회하게 됩니다. 아오는 어느덧 자동차 판매회사의 최우수 사원이 되었고, 아카는 세미나를 운영하는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쓰쿠루는 마침내 친구들이 자신과 절교한 충격적인 이유를 듣게 됩니다. 한편 시로의 소식은 쓰쿠루에게 또 다른 충격을 안겨주었고, 구로는 놀랍게도 지구 반대편 핀란드에 살고 있습니다. 쓰쿠루는 끝내 핀란드행을 선택하며 자신의 순례의 마지막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다자키 쓰쿠루는 이 순례를 통해 진정한 자신의 색채를 깨닫게 될까요? 그렇다면 그는 어떤 색을 지니고 있을까요? 독자들은 그의 순례를 함께하며 그의 앞에 펼쳐진 미스터리들을 하나씩 함께 풀어나가게 됩니다.
일본의 요네미쓰 가즈나리 교수는 이 소설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 최초의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 소설은 상당히 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누구나의 인생에도 과거 풀지 못한 미스터리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 이제는 ‘미제’가 되어버린 오래 묵은 사건을 과감하게 꺼내어 추적하는 통쾌함 마저 엿보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표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과거와 현재, 관계와 단절, 절망과 희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소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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